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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Logos

성경 에스더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by 크리스천인사이트 2023. 9. 10.

에스더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성경 에스더서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이 찬 후에, 포로에서 귀환하는 스룹바벨이 주도한 제1차 귀환과 에스라가 주도한 제2차 귀환 사이에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유다인 중에 에스더는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고,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이라는 사람의 지위를 높여 모든 대신 위에 두었습니다. 하만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 모르드개가 유다인인 것을 알고는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만은 왕에게 유다인들이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는데 자기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에게 드리겠다며 유다인의 진멸을 허락을 받아냅니다. 하만은 제비를 뽑아 12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스더는 자기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게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자기를 위하여 밤낮 삼 일을 금식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자기 민족의 생명을 구하고 그 일을 꾸민 하만을 처리하였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한 50규빗 높이의 장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을 죽이기로 한 날에 유다인들이 유다인의 원수들을 죽였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날을 제비라는 의미를 가진 부르라는 단어에서 따서 부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에스더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진: Unsplash 의 Vince Fleming

 

1. 보이지 않지만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에스더서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율법, 하나님의 말씀, 제사, 제사장, 선지자’ 등의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단어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참 특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확신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의 삶에 깊숙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잠언 1:20-21을 보겠습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지혜는 길거리에도 있고 광장에도 있습니다. 시끄러운 길목에도 있고 성문 어귀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중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혜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의 삶에 지혜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문화와 문명은 지혜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지혜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모든 영역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언의 지혜를 깊이 파고들면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지혜와 같습니다. 이 말은 주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나 사람들의 모든 삶에서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시편 42:3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이 시편의 저자가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자가 처한 상황을 보니 저자가 믿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자에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비웃는 것입니다.

 

이 시를 다윗의 시로 보고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다닐 때 사람들은 다윗을 보면서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윗의 인생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컸던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기고 사람들이 다윗의 신앙을 조롱할 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다윗의 형편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셔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윗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기대할 정도로 다윗은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시편이 기록될 당시에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삶에 깊이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아마 지금 시대의 성도들 중에도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서 피난 다닐 때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신자의 모습을 보면서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 자신도 '진짜 하나님이 어디 계신 거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내 삶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서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진: Unsplash 의 Adeyemi Emmanuel Abebayo

2.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하는 것은 우리의 교만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3년 후에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모아 무려 180일 동안이나 잔치를 했습니다. 잔치 중에 왕이 술기운에 흥이 났습니다. 왕은 자기의 백성들에게 왕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그녀의 아리따움을 뭇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여 왕의 부름을 거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와스디는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왕의 권세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와스디는 왕명을 거절했습니다. 그것은 왕의 입장에서 볼 때 큰 교만이며 왕에게 행한 대역죄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교만이 왕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교통을 차단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1:4입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여기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 가지 죄가 나옵니다. 눈이 높은 것 그리고 마음이 교만한 것이 죄입니다. 또 악인의 형통이 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마음이 교만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이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께 미움받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저주입니다.

 

잠언 15:25입니다.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우리가 교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허시면 어떤 사람도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3:1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겸순했고 사울은 교만했습니다. 그 결과로 두 사람의 집에 확연한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다윗의 집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 점점 강성하였고 사울의 집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점점 약해졌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와스디가 왕의 부르심을 거절한 것은 그녀의 교만이 표현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교만을 하나님께 노출시키는데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부르시는데 그 부르심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오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그런 교만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은 구원을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위해서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사람은 목회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든지 평신도로써 일반적인 직업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도 순종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부르심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만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위해서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하나님과 언약관계 안에 거하는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은 잘 모릅니다. 

 

시편 50:5입니다.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모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제사로 언약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모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과 언약관계를 유지해 가십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예배로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만함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역을 위하여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전도, 선교, 중보기도, 교사, 찬양단, 운전, 봉사 등등 다양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마음의 교만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분에 넘친다고 생각하고 매우 감사하며 순종합니다. 교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진: Unsplash 의 Hannah Rodrigo

 

3. 우리는 문제를 기도와 금식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왕의 총애를 받던 하만이 모르드개를 미워하였습니다. 왕이 하만을 높이니 모든 사람들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지만 모르드개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이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아말렉족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하만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다인들을 다 죽이려고 왕의 허락까지 받았고, 제비를 뽑아서 12월 13일을 거사 일로 정했습니다.

 

이 일로 모르드개는 궁궐 앞에서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 통곡하였고 무수한 유다인들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사람을 보내서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아가라고 하였지만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왕이 에스더를 부르지 않은지가 30일 나 되었고 그 당시 법으로는 누구든지 왕의 부르심 없이 왕에게 나아가면 죽어야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수산성에 사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자기를 위하여 금식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시녀들과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유다인들은 금식과 기도로 문제를 돌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왕의 부름이 없이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이는 법이지만 왕이 손에 든 금 규를 내밀면 살게 되는데, 에스더가 법을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갔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왕의 눈에 에스더가 아주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에게 금 규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원하는 것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를 하였고, 두 번째 잔치에서 하만의 악행을 왕에게 말했습니다.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한 높은 장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기로 한 날 유다인이 자기들의 원수들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날을 기념해서 부림일로 지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유다인들은 기도와 금식으로 적의 강력한 진을 돌파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주님께서는 산 위에 올라가셨고 제자들은 산 밑에서 귀신 들려 간질 하는 어린아이를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은 그 아이를 단번에 고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조용한 장소에서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마가복음 9:29에 주님의 대답이 나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벽들을 만납니다. 질병, 가난, 대인관계의 장벽 등을 만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 앞에 장벽을 두셔서 우리를 겸손하고 정결하게 만드시지만 많은 경우에는 우리가 그 장벽을 돌파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장벽들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요? 기도와 금식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앞에 있는 장벽들을 돌파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아멘. 저와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앞에는 어떤 장벽이 있습니까? 기도와 금식으로 돌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돌파하지 못할 장벽이 없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에스더 5장에 보면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갑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당시 법으로는 누구든지 왕의 부름을 받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죽였습니다. 만약 왕이 금 규를 내밀면 죽지 않고 살렸습니다. 이 금 규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라 사람이 자신의 인격이나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서면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6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는 대제사장이 되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제사장과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제사장과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제물로써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진: Unsplash 의 Nathan Dumlao

 

5. 모든 것들을 적절하게 안배하시는 하나님

에스더 2장에 보면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모르드개가 그 사실을 왕후 에스더에게 알렸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뢰었고, 조사하여 실증을 얻어 두 사람을 죽이고 그 일을 궁중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엄청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 공로에 대해서 전혀 보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모르드개의 마음이 서운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에스더 6장을 보면 결정적일 때에 모르드개의 공로를 왕이 확인하고 모르드개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대적인 하만을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안배하심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50규빗의 장대를 준비했습니다. 하만이 왕에게 모르드개를 달게 해달라고 청하면 모르드개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전날 밤에 아하수에로 왕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왕은 잠이 오지 않으니 궁중 일기를 읽혔습니다. 하필이면 그날 읽은 내용 중에 모르드개의 공로가 나왔습니다. 왕은 신하들에게 모르드개의 공로를 치하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왕궁에 왔습니다.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하만은 속으로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라고 생각하고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을 입히시고 왕께서 타시는 말을 태우고 왕께서 쓰시는 왕관을 머리에 씌우고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 성을 돌면서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라고 외치게 하소서'

 

왕은 하만에게 그대로 하게 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모르드개를 높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준비한 장대에 자신이 달려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안배하셔서 우리의 모든 상황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만납니다. 때로는 내가 좋은 일을 했는데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일 때문에 곤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장 합당하게 안배하십니다. 그 당시에는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안배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장 적당하게 안배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아픔도, 답답한 상황도 하나님은 적당하게 안배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사진: Unsplash 의 Hannah Busing

 

6.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것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지혜

에스더 7장을 보면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장대를 세웠는데 그 장대에 하만이 매달려 죽었습니다. 이 장대는 십자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3:15를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타락시킨 뱀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사실은 마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를 통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세워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마귀 권세, 죽음의 권세 그리고 지옥 권세를 깨 드리셨습니다. 십자가는 마귀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이었고, 주님은 부활을 통해서 마귀의 머리통을 박살 내버리셨습니다.

 

십자가가 보여주는 다양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역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으나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마귀의 역사를 뒤집으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로 죽여서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마귀의 역사를 뒤집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물을 만났는데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고,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쓴 물이 단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써서 마실 수 없는 물에 십자가를 상징하는 나무가 들어가니 그 물이 단 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역전의 은혜, 뒤집어주시는 은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죽을 위기에 처하니 모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았습니다. 여기서 놋뱀을 매달았던 장대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주님이 구원의 도리를 말씀하시면서 그 장대가 십자가이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이 십자가를 상징하는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므로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뒤집는 은혜, 역전의 은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세상적으로 지혜 있는 자들이 볼 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도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을 보면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이를 뒤집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십니다. 참으로 희한한 역전의 은혜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를 처리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저주를 받고 살다가, 죽음 후에는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십자가의 도를 붙잡으면 이 모든 것들이 뒤집힙니다. 죽어야 할 사람들이 구원을 얻습니다.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마귀의 종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지옥에 가야 할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역전의 은혜입니다.

 

 

오늘은 성경 에스더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둘째, 우리의 교만이 왕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을 차단합니다. 셋째, 우리는 문제를 기도와 금식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적절하게 안배하십니다. 여섯째, 십자가는 모든 것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에스더서를 묵상하며 승리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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