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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Logos

하나님이 쓰는 사람들의 특징

by 크리스천인사이트 2022. 9. 2.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사울


저는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 받다가 버림받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왕입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정말 영광스러운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교만에 빠집니다. 결국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우리는 교만을 조심해야 겠습니다. 지금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처럼 끝까지 하나님께 붙어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시험이 오고 어떤 유혹이 와도 하나님만 붙잡고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울 왕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바로 다윗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다윗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구약에서 무려 800번이나 나오고 신약에서는 60번이나 나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정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쓰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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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약한 자를 쓰십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의 집으로 갑니다. 이새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일곱 아들과 함께 몸을 성결하게 하고 사무엘 앞에 섭니다. 사무엘은 거기에 모여 있는 일곱 아들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택하신 왕이라고 생각하고 기름을 부을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모인 일곱 아들 중에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들판에서 양을 지키고 있는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 다윗을 불러옵니다. 사무엘이 다윗을 보니 하나님께서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새의 아들 중에서 막내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다윗이 막내였다는 말은 그가 단순히 형제 서열상 말째라는 말만은 아닙니다. 다윗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약자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라는 그 시대의 지도자가 이새의 집에 방문을 하니 이새는 자기 아들들 중에서 가장 부족하게 보였던 다윗을 들판으로 보내서 양을 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형제 중에 가장 말째요 약자였던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막내고 약자인 다윗을 하나님은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선택을 보면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가 공회 앞에서 했던 설교가 생각납니다. 사도행전 4장11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쓸모없는 돌처럼 생각하고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머릿돌처럼 예수님을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집을 지을 때 머릿돌이 가장 중요합니다. 머릿돌은 기준이 되는 돌입니다. 이스라엘의 건축가들은 머릿돌을 중심으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머릿돌은 건물의 벽과 벽을 연결해주는 필수적인 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건축자들은 건축이 끝나면 이 머릿돌에 자기의 이름을 써놓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많은 민족 중에서 유대인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7장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하나님은 유대민족처럼 수효가 적고 약한 나라를 인류구원을 이루는 구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민족으로 사용하신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쓰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강하고 능력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인을 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서 40년간 목자생활을 하고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신뢰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만약 모세가 40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던 나이에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자기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40세의 모세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쓰시는 이유는 당사자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큰일을 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신뢰하게 되고 그 결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교만은 가장 무서운 영적인 독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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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은 자신의 일에 성실한 자를 쓰십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일곱 아들 중에서 왕으로 기름부을 아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이새에게 묻습니다. “네 아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대답합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여기서 우리를 주목시키는 말이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라는 말입니다. 사무엘이 자기 집에 온다면 다윗도 관심을 가지고 쫓아 왔을 법도 한데 다윗은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윗의 아버지가 다윗에게 양을 치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에 할 수없이 양을 친 것이지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사무엘과 함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고약한 아들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양을 버려두고 사무엘이 있는 집으로 왔을지도 모릅니다. 혹 집으로 오지 않았어도 사무엘이 왔는데 자기만 빠진 그 상황에 화가 나서 양을 돌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성실하게 양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습니다. 귀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맡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종살이를 하면서도 성실하게 일해서 주인에게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에게 모든 재산까지 맡길 정도로 요셉은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요셉의 성실함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간수는 요셉에게 감옥총무를 맡겼던 것입니다. 요셉은 옥중에서 모범적인 죄수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왕의 부름을 받고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다른 인물들을 찾아볼까요? 사무엘은 깊은 밤 성전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을 때 부름 받았습니다. 엘리사는 밭을 갈고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베드로는 바다에서 그물을 고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불러 쓰셨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들레헴 목자들은 밖에서 자기 양떼를 치다가 천사의 음성을 듣고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주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사람도 쓰십니다. 무식한 사람도 쓰십니다. 무능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쓰십니다. 또 죄가 많은 사람도 쓰십니다. 그러나 책임감이 없는 사람,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쓰시는 법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는 기준이 나옵니다. 성경에서는 몇 가지 기준을 말하는데 첫째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셨으므로 나는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면 심판을 이기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두번째 기준은 충성됨입니다. 충성됨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실함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맡겨진 달란트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맡겨진 달란트에 충실하지 못했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소리를 듣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납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신령한 생활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령한 생활에 대해서 오해한 사람들이 자기의 생활에 성실하지 못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만 힘을 씁니다. 신령한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 하는 생활입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현장에서 성실해야 합니다. 사업하는 이들은 사업의 현장에서 성실해야 합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성실해야 합니다.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삶의 자세 중에 하나는 성실함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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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은 중심이 하나님과 맞는 사람을 쓰십니다.


사람은 용모와 키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이 엘리압이라는 이새의 큰 아들의 외모를 보고 그를 왕으로 기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입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엘리압은 외모는 멋있었는데 중심이 하나님과 일치 하지 않아서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셔서 사용하시는 분명한 이유는 그의 중심이 하나님과 맞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외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기뻐하셔서 그를 쓰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일곱 형들하고는 중심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 점을 주목해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중심을 보시는데,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이란 바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보면 두 사람의 제사의 차이를 육신의 눈으로는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아주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에게 믿음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의 제사는 믿음의 제사였고, 가인의 제사는 믿음은 없이 모양만 갖춘 제사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의식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을 상대하지 말고 하나님을 상대하며 하십시오. 그것이 믿음이며 그런 중심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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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은 성령 충만한 사람을 쓰십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은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에게 감동되었다는 말은 자기 생각이나 자기 감정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성령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적인 사람을 쓰십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찬송생활입니다. 성령께 사로잡히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찬송을 합니다. 바울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찬송과 기도에 응답하셔서 옥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옥에 갇힌 것처럼 답답할 때 찬송하고 기도하십시오. 바울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옥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행복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자꾸만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성령 충만하여 찬송을 좋아했습니다. 시편 119편 164절을 보면 다윗은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노래를 지어서 불렀던 싱어 송 라이터였습니다. 시편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반주하며 자기가 불렀습니다. 수금을 타는 솜씨는 특별했습니다. 사울에게 악령이 역사하여 아플 때 다윗이 사울 왕 앞에서 수금을 타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면 사울에게 역사하던 악령이 떠나고 사울의 병이 상쾌하게 나았습니다. 찬송에 영적인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떠나면 악령이 역사를 하는데 악령이 역사하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떠나니 사울에게 악령이 역사를 했습니다. 악령이 사울에게 했던 일이 번뇌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많은 번뇌로 인해서 불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누구도 사울에게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잘 훈련된 군인들이 사울을 경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무서울 것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악령이 역사하니 사울은 무서웠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악령은 사울을 불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고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는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즉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를 통해서 악령이 사울에게 역사했고, 사울의 목을 졸랐던 것입니다. 또 성령을 소멸하고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는 원인 중에 하나는 욕심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을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을 비우십시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실 것이고 그 결과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악한 영이 역사할 때는 아름다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가 모두 나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악한 영이 들어가면 개인이 망하고,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망합니다.

성령의 인도에 방해 되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을 비워야 악령의 역사가 물러갑니다. 사람에게 물질의 유혹이 오고, 이성의 유혹이 오고, 명예의 유혹이 오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충만 할 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그 위대한 삶은 능력이나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삶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쓰임 받는 삶입니다.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귀한 인생을 사시리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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