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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Logos

믿음을 확인하는 질문 3가지

by 크리스천인사이트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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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믿음을 잘 나타내는 이야기는 가나안 정탕꾼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던 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에서 지휘관 한 사람씩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해보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장대하였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백성들에게 보고를 하는 정탐꾼들은 2패로 갈렸습니다. 다수인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의 백성들은 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메뚜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애굽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지휘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여호와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온 회중은 돌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나이가 20세 이상이었던 사람들 중에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자신을 믿음을 확인하고 시험하고 확증해 볼 수 있는 3가지 질문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자신의 믿음이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이 가짜라고 판정을 내려주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우리 주님은 그들을 저주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_ 고린도후서 13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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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무엇을 바라 보는가?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는 것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는 그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고 또 그 사람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썼습니다. 처음에 맹자가 묘지 부근에 살았는데 늘 보는 것이 상여꾼들이라 맹자가 상여꾼들의 흉내를 내며 놀았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했는데 이사 간 곳이 시장 옆 있었습니다.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간 맹자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며 놀았습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맹자가 서당에서 글 읽는 흉내를 내게 되었고 나중에 훌륭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성질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온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다수를 차지했던 10명의 정탐꾼들과 소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보는 것이 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많은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고 실과가 크고 탐스러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은 체구가 몹시 크고 힘이 세며 전투를 잘하게 단련된 강한 사람들임을 보았습니다. 또 그 땅에는 견고하고 큰 성벽을 높이 쌓아 그 성벽을 넘거나 무너뜨리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자기 백성들을 비교하여 보니 자신들은 메뚜기같이 작고 무능해 보였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현실을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현실만 봤다는 것입니다. 현실만을 보았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는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에게 자기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 갈렙은 10명의 정탐꾼들과 똑같이 정탐을 하고 돌아왔지만 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현실을 보고 현실적인 보고를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 넘어에서 시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수기 13:30절에서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여호수아와 갈렙이 비록 가나안 족속들이 크고 강할지라도 승리를 확신했던 이유는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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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3장 8-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족속들의 신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현실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육안으로만 세상을 보면 내가 뭔가 좀 잘하면 교만해지고 내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두려워 떨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안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담대하고 겸손하고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은 수많은 고난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천만인이 자기를 죽이기 위하여 둘러 진을 치는 상황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영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3편 5-6절을 보시면 다윗의 이런 고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사실 이때 다윗의 현실은 암담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누워 자고 깨었다고 말했습니다.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육안으로 현실만 본 것이 아닙니다. 영안으로 자기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붙들고 계시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안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경건하게 살 수 없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하려면 영안으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 세상과 타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죄악에 빠져서 헤맬 수 있겠습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총리 일을 볼 때 있었던 일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음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음란한 여인이 요셉을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번 요셉에게 추파를 보냈지만 요셉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집안에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두 사람만 있게 되었습니다. 음란한 그 여인은 요셉을 붙들고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39장 9절에서 요셉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 우리는 육신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영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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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이스라엘백성들은 믿음의 보고를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수인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의 말에 집중을 하다가 불신앙의 말에 지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불신앙으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들은 말이 그들의 믿음을 변질시켰고, 변질된 믿음이 하나님께 매를 맞을 행동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모세를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돌로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말았어야 할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은 광야에서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들은 다수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므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종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마귀의 소리는 육신을 자극하여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아주 위험한 소리입니다. 유다가 이 음성에 귀를 기울이다가 멸망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인간의 소리입니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리는 참고할 뿐이지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언제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마귀의 소리나 사람의 소리를 분별할 수 있는 잣대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파워가 있어서 듣고 믿는 사람에게 실제가 됩니다. 우리는 마귀의 소리는 대적해야 합니다. 인간의 소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소리나 다 들어서는 안 됩니다. 경계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불신의 말, 부정적인 말, 악평하는 말, 원망의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계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 성경적인 말은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말과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은혜로운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고 가려 듣는 복된 귀를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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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은 후에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신앙의 문제이고 두 번째 문제는 그들이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목적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에게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후손인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의 말을 듣고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목적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던 것입니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우리의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인기를 누려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인생을 잘못 산 것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답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단 하나 영혼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혼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벧전 1:9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영혼이 거듭나는 중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듭남의 결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 3:5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주님께서 자신이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떠나가지만 제자들은 염려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네 가지가 이유가 나옵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도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 14:1-3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사해서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천국에 상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 앞에 갈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고 다듬으시면서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좀 잘살고 좀 더 높아지는 것에 초점을 모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런 것들은 때가되면 자동으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천국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곧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 날을 위하여 훈련하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사람들이 이걸 모르니까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전폭적으로 투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나만 가면 안 되니까 전도해야 하고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 왕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한 결 같이 전도를 열심히 하니까 하나님께서 생활도 책임을 져주시더라고 간증을 합니다.

 

우리는 10명의 정탐꾼처럼 우리의 현실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현실을 넘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 말이나 들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의 음성은 분별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은 분별하여 참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하여 듣고 믿음으로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가 천국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땅에 것에 목을 매지 마시고 천국을 준비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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