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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당할때 우리의 자세

by 크리스천인사이트 2022. 8. 19.

고난당할때 어떻게 해야하나?

인간은 누구나 고난을 당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속 인물들도 모두 하나같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도 바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바울은 시위대 안에 갇혔습니다. 바울의 육신은 갇혔지만 그의 복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위대 안에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믿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시위대 밖에서도 바울의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뜻을 가진 자들도 사용하셨고 시기심으로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사용하여 복음이 확산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은 고난 속에 있으면서 믿음의 반응을 보인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상에 고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도 나름대로의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겸손하게 만드시기 때문에 때마다 적당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리가 고난을 당할때 어떻게 반응해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5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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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라.

 

바울은 복음에 관해서도 전체적인 시야를 가졌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2절에 보면 바울은 옥에 갇혔지만 옥에 갇힌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만 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옥에 있으나 오히려 복음이 전파 되어 진전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17절에 보면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밖에서는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해주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전체적인 시각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결국 25절을 보면 비록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히기는 했으나 빌립보 교우들의 믿음은 더욱 진보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이죠. 믿는 사람들의 고난 역시 전화위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와있습니다 로마서 8:28에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날, 한 집사가 담임목사에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번에 우리 딸이 사법시험을 봤는데 떨어지게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이 너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집사님! 왜 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집사님이 대답했습니다. “고것이 공부를 잘해서 너무 기고만장해요. 그러면 콧대가 높아 시집을 못갈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고시에서 떨어져 인생이 무엇인지도 알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런 이유라면 한 번쯤은 떨어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니 떨어지는 것이 더욱 유익입니다. 그 집사님은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죽이고 망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리고 흥하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인생은 길게 봐야 합니다. 지금 힘든 것만 보면 안 됩니다. 길게 보면 지금 당하는 고난이 약이 되고 거름이 되어 내 인생을 더 건강하게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체적인 시야를 가졌습니다. 믿는 우리들이 그저 보여지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전체적인 시야를 갖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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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명에 헌신하라.

 

사도 바울의 사명은 복음 전파였습니다. 그 사명은 바울만의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명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주님에게로 인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자꾸만 감동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감동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아가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빌립보서 1장 12절, 13절을 보면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순간에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바울 때문에 복음이 온 시위대에 속한 군인들과 로마의 고관대작들에게까지 전파되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의 가장 심장부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울을 통해서 담대하게 전파되어지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시위대 안에서 군인과 함께 쇠사슬에 매였습니다. 쇠사슬 한쪽에는 바울이 묶여 있고 다른 쪽에는 군인이 묶여있었습니다. 군인들은 교대하며 바울과 함께 사슬에 묶여서 바울을 감시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다른 죄수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죄를 짓고 이곳에 왔소?” “나는 복음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복음이 뭐요?” 그러면 바울은 복음을 설교했을 것입니다.

 

그 때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 받는 바울의 모습을 눈여겨본 많은 귀족들이 바울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영접하여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결국 바울로부터 이 복음을 들은 고관들이 가정에 가서 이야기하고, 친구에게 전하고 해서 전파된 복음이 로마의 황궁과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빌립보서 4장 22절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마지막 문안 인사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 보면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으며 그들도 빌립보 교우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옥에 있든지 옥 밖에 있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환경이 좋든지 나쁘든지, 인생에 고난이 있든지 없든지 전도의 사명에 헌신해야 합니다.
 '암, 너 잘못 걸렸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 모 집사님이 쓴 책입니다. 이 분은 30여년 평범하게 예수를 믿고 살아온 분인데 어느 날 폐암 3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갑자기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후 50여 차례 항암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그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50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하루에 두 번씩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했습니다. 바로 복음 전하는 사명입니다. 그래서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암 환자와 가족들 60여명이 예수 믿고 주께 돌아오게 됐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살인마 지존파를 전도해서 회개하고 예수 믿게 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하나님께서 암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암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분은 고난이 찾아오기 전에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겪으면서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전도하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전도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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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행복을 뺏기지 말자.

 

빌립보서 1장 18절에 보니 바울은 옥에 갇힌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옥에서도 행복을 선택하고 행복하게 옥 생활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옥에 갇혔다면 그는 기뻐하기보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기쁨 없이 옥 생활을 할 텐데 바울은 오히려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사실 바울은 그 때 보통 옥생활이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행복을 빼앗기지 않고 기뻐했습니다. 로마에 가시면 관광 명소 가운데 세 분수 성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울 사도가 순교 당하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앞 바울이 순교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보면 참혹하답니다. 바울 사도의 순교 당하는 그림은 바울을 묶어놓고 무릎을 꿇게 하고 뒤에서 목을 친 게 아니라 앞에서 머리를 잡아당기고 도끼로 쳤습니다. 그러니까 이 머리가 쓸려나가서 세 번 튀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튈 때마다 물줄기가 분수처럼 마른 땅에서 별안간 솟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 자리에 기념 예배당을 짓고 세 분수 성당이라고 지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보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빼앗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빌립보서를 다른 말로 희락의 복음, 기쁨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는 보통 사람들과 가치관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보다 복음 전파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해도 자신의 현실에 문제가 있다면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은 기쁨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현실문제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전파였던 것입니다.

 

둘째, 그는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성령은 희락의 영이십니다. 로마서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안에서 희락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괴롭든지 기쁘든지 합니다. 자기 죄 때문에 괴롭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괴롭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괴롭습니다. 반대로 기쁩니다. 어려워도 기쁘고 부족해도 기쁩니다. 현실을 뛰어넘는 기쁨이 생깁니다.

 

셋째, 그는 보통 사람들과 시각이 달랐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세일즈맨들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사장이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사장은 귀퉁이에 까만 점 하나를 찍은 흰 수건을 세일즈맨들에게 펼쳐 보이면서 “무엇이 보이느냐?”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까만 점이 보인다”고 대답 했였습니다. 사장은 “자세히 보십시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까만 점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때 사장이 말하기를 “여러분! 까만 점은 이 구석에 하나밖에 없는데 왜 이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릅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관점과 긍정적인 관점입니다.

부정적인 관점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열 가지 중에 좋은 것이 아홉 가지가 있고, 좋지 않은 것이 한 가지가 있을 때, 그 좋지 않은 한 가지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리고 그 좋지 않은 한 가지에 목숨 걸고 난리를 칩니다. 아홉 가지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아홉 가지의 장점은 보지도 않고 한가지의 단점을 물고 늘어집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사람은 열 가지 중에 좋은 것은 한 가지이고 좋지 않은 것이 아홉 가지일 때도 좋은 것 한 가지를 보며 좋아합니다. 비록 아홉 가지의 단점이 보여도 한가지의 장점을 보며 칭찬해 주고 격려해 줍니다. 바울은 믿음 안에서 절대 긍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옥도 바울의 행복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내가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해지고 불행을 선택하면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긍정을 선택하고 행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있어도 절대 행복을 빼앗기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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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절에서서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나니”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어떻게 하면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주님이 존귀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신앙입니다. 또한 그는 고린도전서 10:31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바울은 이 말씀대로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창 1:27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어 이 지구상에 두신 이유는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동물의 왕국에 보면 짐승들이 오줌을 싸서 영역표시를 합니다. 고대 왕들도 영역표시를 했습니다. 그들이 영역 표시를 하는 방법은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 왕의 형상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땅이 나의 땅이다”라는 영역 표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드신 이유가 일종의 영역표시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니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세워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후 2:15과 고후 3:3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주님의 향기를 맡고 주님의 편지를 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느냐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하느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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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월적인 삶을 살라.

 

바울은 감옥에서 환경에 대해서 초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초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21-24절에 보니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초월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초월적인 삶이 살려면 문제를 좀 멀리 놓고 보아야 합니다. 문제를 멀리 놓고 보면 문제보다 더 많은 좋은 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만 보지 마십시오. 어떤 문제를 볼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보십시오. 그러면 눈앞에 있는 어려움을 초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현실도 초월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죽음도 초월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고난과 문제는 나를 달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정금 같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풀어주실 수 있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리스도를 본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고난 중에 바울과 같은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고난 중에는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사명에 헌신하며, 행복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초월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믿음과 기도로 넉넉히 고난을 이겨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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