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사이트 Insight Storage

개역개정 성경이 비판받는 이유 4가지

by 크리스천인사이트 2023. 10. 31.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성경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한국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성경이라고 하면은 개역개정 4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성경적인 말투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러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개역개정 성경입니다. 

 

 

이러한 개역 개정 성경을 전통적으로 이제 우리 교회들에서 많이 사용하죠. 그전 세대에서는 개역 한글 성경을 많이 썼었고요. 개역 한글 성경을 그나마 현대식으로 바꾼 것이 바로 '개역 개정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개역 개정 성경'에서도 이제는 우리가 탈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1. 개역개정 성경은 과연 정확한 번역인가?

 

많은 분들이 "개역개정 성경이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어려운 식으로 쓰여있기 때문에 그 번역이 굉장히 정확할 것이고 그리고 좀 현대식으로 쓰이고 우리가 알아듣기 쉬울수록, 그 원래의 의미 그 원문의 전달이 떨어질 것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해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사실 원어를 번역한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되었던 성경은 처음에 '한자와 영어로 된' 성경을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님들과 함께 20세기 초, 그러니까 1900년대 초에 그러한 번역이 이루어진 것이죠. 그렇게 번역을 하다가 나온 결과물이 바로 '개혁'버전이었습니다.

 

그 '개혁 버전 성경'을 1998년도쯤에 다시 그 원문을 비교 대절하고, 성경원문을 참조하여 만든 성경이 바로 '개역 개정 성경'입니다. 물론 성경 원어 원문을 전혀 참조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원문을 대조해서 이런 부분은 좀 더 번역이 잘못된 거 같다 했던 부분들은 수정을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이 '개역개정 버전 성경'인데요. 

 

그러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성경 전체를 그 원문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로부터 번역한 성경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개역개정 성경 다음으로 쓰이는 성경들, 즉 현대식으로 말을 바꿨다고 하는 '표준 새 번역 성경'은 원문에서 번역한 성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많이 쓰는 "개역개정 성경이 무조건 원문에 더 가까울 것이다"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기사들이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개역개정 성경에는 약 100가지가 넘는 오역이 있다'라고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치명적인 오역이 아니더라도, 그 개역개정 성경 특유의 말투의 오묘함 때문에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구절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개역개정의 시편 23편 5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쳐나이다 _ 시편 23:5 (개역개정)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_ Psalms 23:5 (NIV)

여기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라고 했을 때,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을 prize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한자를 번역해서 나오는 오해인데요. 여기에서 이 '상'은 table 즉 음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약 prize라고 해석을 했을 때, 많은 의미와 뉘앙스가 좀 달라지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한 치명적인 오해를 할 수 있는 구절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

이 세대를 무엇을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_ 마태복음 11:16 (개역개정)
To what can I compare this generation? They are like children sitting in the marketplaces and calling out to others _ Matthew 11:16 (NIV)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장터에서 아이들이 나와서 피리를 부는데, 그 다른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도 울지 않고, 웃지 않고, 이렇게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비유를 예수님이 하십니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부분의 비유에 대해서 "선지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렇게 복음을 외쳤는데, 그 외침에 반응하지 않는 이런 패역한 세대"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문장에서 주어가 되게 애매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을 영어성경에서 보면 they are like children이라고 하는 이 부분에 children이 피리를 불었을 때 반응하지 않는 애들이 아니라, 바로 피리를 부는 애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패역한 세대는 바로 피리를 부는 애들이라는 것입니다. 치명적입니다.

 

이런 번역의 애매함. 개역개정 성경이 이런 부분이 꽤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굉장히 잘못 알고 있고, 특히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기독교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완전히 이상한 단어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다"라고 했을 때, 그 '구속'이라는 단어를 진짜 말 그대로 어디에 수감되는 '구속'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2. 인물과 지명의 표기가 실제 표준 표기와 다르다.

 

개역개정 성경에 나온 인물이나 지명의 표기들이 실제 사용되는 표준표기와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그런 표기들 또는 역사적인 표현되는 표기들과 너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파라오 왕을 '바로'라고 표기를 하죠. 이런 '바로 왕'은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표기입니다. 근데 사실 바로왕보다는 '파라오'라고 표현했을 때 모든 사람에게 잘 와닿습니다. 왜냐하면 비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사실 '파라오'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들어봤고 문화적으로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를 '가이사 아구스도'라고 개역개정 성경은 표기하는데요.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예수님이 계셨던 시대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이 시대는 로마 초대 황제였던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지배하던 시대였어"라고 할 수 있다면 사실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거죠. 확 역사적으로 팩트처럼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뭔가 역사적 배경이 이렇게 형성되어 있었고, 비신자들에게 뭔가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죠.

 

'아, 이런 대단한 로마 황제가 지배하던 그런 권력의 시대에 예수님이 실제로 존재했었구나". "맞아, 그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그 로마황제 시대야"라면서 굉장히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만약 개역개정 성경의 번역대로 '가이사 아구스도'라고 말을 하면, 뭔가 전혀 새로운 이야기 같잖아요. 설득력이 떨어지는 거죠. '한국교회'에서만 사용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왜 그런 용어들을 굳이 개역개정 4판까지 개정을 하면서 전혀 아직도 바꾸지 않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다리오 왕'이라고 개역개정 성경에 등장하죠. 이 왕의 경우에는 실제로 "다리우스 왕"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고 쓰이고 있어요. 그리고 심지어 10대나 20대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게임 중에 '롤'이 있잖습니까? 그거에도 '다리우스'라는 왕이 등장을 해요. 그럼 최소한 뭔가 그런 접점이 되잖아요.

 

뭔가 모를 그런 친근감이 생길 수 있는 건데요. 사회나 친구들끼리도 쓰는 용어로 익숙함이 있을 건데. 그런데 굳이 그런 용어를 교회서만 사용하는 이상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거는 뭔가 굉장히 그렇게 정말 잘못되었다고 까지는 할 순 없지만, 분명히 복음을 전달함에 있어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명백히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3. 왜 우리는 '개역개정 성경'만을 고집하는 걸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개역개정 성경을 고집하는 걸까요? 솔직히 말해서 개역개정 성경을 교회 안에서 바꾸려고 할 때마다, 그 '연세 있으신 분'들의 반대와 비판에 직면했을 거라 추측합니다.

 

하지만 개역개정을 성경을 다른 버전으로 바꿈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개역개정 성경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전통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성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반대로 개역개정 성경의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뭔가 종교적인 고양심을 준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말씀 암송을 할 때도 뭔가 멋있고 좀 종교적인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 있겠습니다. 어렵고 멋들어진 어조니까 그렇겠지요. 하지만 성경의 의도가 종교적 고양심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예수님이 성경에서 비유를 말씀하신 것도, 뭔가 멋있는 말이라기보다 그 당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니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우리가 다 아는 말씀이 있잖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_ 요한복음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_ John 3:16 (NIV) 

사실 여기서 사용하는 '독생자'라는 단어는요. 교회 말고는 정말 전혀 그 어디서도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정말 어디서도 사용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냥 뭔가 멋있단 말이죠. 하지만 그게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냥 이상하게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야 이미 익숙해졌지만요.

 

 

반면에 영어 표현을 함께 보면, 'His one and only Son'이라고 아주 평범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것들 자체가 세상과의 단절을 그리고 초신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데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어떤 동아리 같은 데를 갔는데, 계속해서 자기들만 아는 그런 '용어'나 '단어들'을 남발을 하면, 당연히 처음 온 사람들은 그 무리에 들어가기 어렵고 이질감을 느끼는 겁니다.

 

 

 

4. 개역개정 성경이 낳은 교회만의 용어와 말투

 

이런 개역개정 성경 때문에 정말 뭔가 교회만의 사회적 방언이 형성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뭔가 세상에서 전혀 쓰지 않는 식의 그러한 말투들. 그리고 기도하는 말투. 대표기도하는 말투' 그러한 것들이 종교적으로 겹겹이 쌓여서 기독교의 진짜 '본질'을 오히려 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요소가 된다는 겁니다. 세상과의 단절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좀 타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쉬운 성경을 그대로 쓰기도 좀 애매합니다. 이해되기 쉬운 버전의 성경의 경우에는 의역이 너무 많습니다. 원래의 원문에 뜻에서 좀 벗어난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직 우리가 공예배때에 '메시지 성경'을 쓴다거나 하기에는 의역된 부분이 많아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굳이 대안을 찾자면..

 

저는 개역개정에 대한 대안으로 '표준 새 번역'이라든가 아니면 '공동번역'같은 성경은 신학자들에 의해 원문에서 그대로 번역된 성경이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동번역의 경우에는 가톨릭과 같이 번역했다는 이유로 많이 거부하는 상황이 있죠. 그 부분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가끔 공동번역도 함께 참조해서 보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예배는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개인적으로 읽을 때는, 굳이 개역개정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뭐 신학생들의 경우에는 좀 다른 얘기겠지만,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은 사실 히브리 원어를 보셔야죠. 그게 아니라면 우리 같은 평신도는 성경의 전체적인 문맥과 스토리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정도 의역된 성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한 구절에 집착하기보다는 말이죠. 

 

누가 몇 번 성경을 통독했네 이런 것은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을 읽더라도 전체적은 큰 그림에서 이해하고 잘 파악하여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삶에 적용할 때도 몇 구절만 가져와서 그것에 집착해서 일대일로 대응하기보다는 성경의 큰 그림 큰 줄기를 내 삶에 가져와 적용해야 합니다. 억지로 인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결국 흥미를 잃고 그만두게 되기 때문이죠. 

 

결론으로 결국 우리는 이제 개역개정을 더 개정을 하던지, 아니면 다른 성경으로 대체해야 하지 않나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맨날 말로만 다음세대, 다음세대만 외치고 본질적인 것에서 이런 변화와 배려가 없다면 다음세대들에게 설득력을 잃어갈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이제 곧 10년 정도만 지나도 저도 기성세대가 될 사람으로서, 이제 다음 세대인 10대, 20대 초반 이런 친구들, 더 나아가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 좀 더 변화되어서, 앞으로 정말 신앙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올 텐데 그런 시대에 성경이라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공예배때 쓰이는 성경을 좀 바꿀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